6.10항쟁의 도화선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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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육장 남영동 대공분실 –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역 너머, 암울한 시대의 상처로 기억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대공수사 기관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입니다.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던 곳이었습니다. 피의자들은 정문이 아닌, 건물 뒤편 출입구를 통해 아무도 모르게 취조실로 끌려갔는데요. 이 나선형 계단은 5층 취조실로 곧장 연결되는 비밀 통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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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온 서울대생 박종철.

당시 경찰의 수배를 받던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대라고 강요받았지만, 박종철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묻힐 뻔했던 박종철군 죽음의 진실은 중앙일보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됩니다.

언론 보도에 이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박종철군 죽음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독재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박종철에 이은 이한열의 죽음으로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이는 독재정권 타도를 요구하는 6월항쟁의 뜨거운 불씨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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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서 20여일 간 계속된 시민들의 투쟁은 결국 전두환정권의 막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이끌어내면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값진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죠.

고통의 역사로 기억되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새롭게 탈바꿈했는데요.
지난 과오를 딛고 이제는 진정한 인권 수호의 역사를 써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박종철은 살아있다!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제-옛 남영동 대공분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박종철 열사(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년)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신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박종철 정신을 되새기고자 열사가 물고문으로 스러져 간 옛 남영동대공분실에서 진행된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추모제 주요장면입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김근태를 전기고문한 그곳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세상을 떠나기 까지 고문 후유증에 의한 파킨슨병으로 평생을 시달렸다.
김 고문은 그의 책 ‘남영동’에서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라고 치떨리는 시간들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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