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보호법으로 임신중절과 불임수술 강제한 일본정부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하기 만든 일본의 우생보호법

독일 나치의 단종법(断種法)을 바탕으로 패전 후 일본이 만든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 1948~1996)에 따라 강제불임수술을 당한 홋카이도의 여성(75)과 구마모토현의 남성(73)이 28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우생보호법에 대하여 
현재 알려진 피해자만 16,000명 정도가 된다. NHK가 전국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미성년자가 926명이며 그 중에는 9살 여아도 있었다.
일본은 폐전 후 식량과 가옥이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전쟁중에는 일할 사람과 병사가 필요해서 낙태죄를 만들어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불임수술과 피임도 강하게 규제했다.

우생보호법은 산아제한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우생정책이기도 했다. 신생아 수를 줄이는 대신 건강한 아기만 출산하도록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못낳게 한 것이다. 당시 연합군 총사령부는 의학적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법안에 반대했지만 일본정부는 강행했다.

홋카이도의 여성은 임신중절수술도 강제당했다고 처음으로 청구사유에 추가했다. 또한 남편(81)도 가족을 형성 할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제소한 것도 처음이다.
변호인단은 지적장애가 있는 이 여성이 결혼 후 1981년에 임신을 했지만 친척의 설득에 남편이 동의서에 서명하고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과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수술기록은 병원에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소송을 제기한 구마모토현의 남성은 변형성 관절염을 앓았는데, 10~11살 때 시내병원에서 불임수술을 받았다. 사전에 의사의 설명은 없었고 수술 사실도 15살 무렵에 처음 알았다고 한다. 피해남성은 국가로부터 한마디 사과라도 받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다.

원고 측은 출산 결정권을 침해당하여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국가가 구제조치를 게을리하여 입법부작위의 과실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홋카이도의 부부가 2,200만엔, 구마모토의 남성은 3,300만엔이다.

홋카이도의 할머니는 “자녀를 낳아 남편과 함께 키우고 싶었다. 지금도 너무 슬퍼고 억울하다” 고 했다.

입법부작위 (立法不作爲, Omission of legislation )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 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과 관련하여 전혀 입법하지 아니하여 입법 행위에 흠이 있는 경우를 이르는 말.

우생보호법 주무부서인 후생성의 담당국장이 1973년 학문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발언한 사실이 최근 일본의사협회 기록에서 발견되었다.
일본정부는 ”우생상의 관점에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는 동법의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1996년 강제불임수술의 근거 조문을 삭제한 ‘모성보호법’으로 개정하기 전까지 20년간 수술을 용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연합군사령부, 강제불임수술은 의학적 근거 불명

장애인 불임수술을 강제한 우생보호법이 일본국회에서 심의된 1948년 일본을 간접통치하고 있던 연합군 총사령부(GHC)가 법안에 불임수술의 대상에 포함된 대부분의 질환의 유전성에 대해 여러차례 의학적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하며 나치 독일의 단종법 이상으로 문제시 했던 GHC 문서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