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 박근혜도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해 보여

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오늘의 키워드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착시에 빠진 그들, 리플리 증후군처럼…

Ripley Syndrome 300x159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박근혜도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해 보여‘보수’ 그리고 ‘수구’.
원로 보수학자인 송복 교수는 이 둘을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보수는 절대 수구가 아니며 보수는 언제나 개혁과 변화를 지향해 가는 것”
듣고 보면 당연하다 생각도 들지만 수구 역시 보수를 주장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커다란 간극이 착시에 의해 가려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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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세상을 착시에 빠지게 하려다가 혹 자신들이 착시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가…. 마치 리플리 증후군처럼 말입니다. 2017.1.17

리플리 증후군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용어이다.

박근혜 대통령,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해 보여…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가 박근혜 대통령을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먼저 박 대통령의 세 가지 특징을 분석했다. “우선 지적으로 취약한데,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약하다. 둘째, 대인 관계에서 타인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셋째, 그럼에도 자기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기에 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지해왔다”고 적었다.

그는 “여기서부터는 그냥 추정이고 소설일 뿐”이라는 전제로, 아이들이 자기애를 형성하는 과정에 대해 박 대통령의 십대 시절을 미루어 추론했다. 서 박사는 “그는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 결정적인 차이는 리플리증후군처럼 적극적으로 자기와 주변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매우 특수한 그의 조건 덕분인데 그는 ‘영애=공주’로서 십대를 보냈다.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타인에게 체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이 적당히 포장해준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무능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출을 피하는 정도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 박사는 “성장을 멈추고 자기를 감추고 싶지만 성취는 이루고 싶은 그에게 조력자는 꼭 필요했을 것”이라며 조력자에게 이용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스스로를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고, 성숙을 포기하고 유아적 자기애에 머무르고 싶어 한 욕망의 대가”라고 적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 페이스북 전문

나는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인간 심리를 다루는 이 나라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궁금할 것이다) 알 길은 없다. 가족도 안 만난다는 그가 나를 만나줄 일은 없을 테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영원히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생애 전체를 통해 드러난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우선 그는 지적으로 취약한데,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약하다. 둘째, 대인 관계에서 타인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셋째, 그럼에도 자기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기에 소수의 믿을만한 사람에게 의지해왔다. 특이하게도 그가 의지하는 대상은 가족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가족조차 피해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족과는 오래 전부터 왕래가 드물었으며 특히 정서적 교류는 없었다. 그에게 진짜 가족은 구속된 최씨였다. 아마도 그에게 남은 가족은 동생들 뿐이었고 동생들은 그의 이십대 시절 믿고 기대기엔 어렸을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누군가는 부모가 비명에 횡사한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 부모의 폭력적 죽음에 따른 트라우마가 그에게 타인에 대한 불신을 남겼다는 것이다. 분명 트라우마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의 부모가 사망한 시기는 그가 성인이 된 이후다. 이것만으로는 그의 지적 취약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심각한 트라우마로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과제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기도 어렵다.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도망다니기 마련이다. 혹시 그가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이라면 내적 성장이 이뤄졌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치열한 내적 성장의 증거를 찾기란 어렵다. 내적 성장을 이뤘다면 그는 모든 상황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타인에게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통과하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 고통을 이해하고 설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트라우마는 그의 심리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
자료를 두고 봐도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고 그것도 적극적으로 했다. 슬픔에 쌓여 조용히 지내는 모습은 아니었다. 두려움에 시달리며 현실을 회피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나는 그가 권력에 대한 욕구가 원래부터 강했다고 생각한다. 힘을 갖기를 원한다기 보다는 높은 자리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받드는 존재로 살기를 원해왔고 스스로 그럴만 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최 씨가 없다고 멘붕에 빠져서 쉽게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흔히 말하는 것과 같은 꼭두각시는 아니다. 자기는 충분히 존중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포장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자기애 narcissism 는 현실에서 적절한 좌절을 통해 현실성을 획득해 가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추정이고 나의 소설일 뿐이다) 그의 십대는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십대의 아이들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포장하다가 이내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등 자기 평가의 양극단을 오간다. 환상에 도취되어 행복해하다가 이내 스스로의 무능감을 느끼며 좌절한다. 좌절은 아프지만 피할 수 없다. 환상과 좌절은 어느 쪽도 나쁘지 않고 모두 필요하다. 환상을 통해 아이들은 꿈을 가지게 되고 반복된 좌절을 통해 현실감각을 획득한다. 이 과정이 십대의 암중모색이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대개 첫 번째 자녀는 부모의 높은 기대를 받고 그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애쓴다. 그 역시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는 아직 왕조시대의 문화적 영향이 많이 남아있던 60년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 나라를 이끌 듯 자신은 이 나라의 가장 뛰어난 소녀여야 한다는 환상과 부담을 동시에 가졌을 것이다. 부모도 순수한 선의로, 즉 아이가 잘 크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탓에 부담을 키우는데 일조했을 수 있다.
어쨌든 아이의 환상은 적절한 좌절을 통해 현실감을 획득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는 그가 가짜 성취를 통해 환상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그는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대단히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으며, 모두가 좋아할만한 성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를 이어 여왕이 될 수 있는 재목이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들 했을 것이고 그 자신에게도 중요한 꿈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면에서는 불안이 올라왔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말해주지 않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니까.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현실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기애를 지켜온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드러내면 위험하기에 말도 줄이고 노출도 줄였을 것이다. 자기의 일부분만 드러내며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해줄 사람만 가까이에 두고,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은 멀리했을 것이다. 그가 현실을 볼 용기가 있었다면, 아니 그에게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이 더 멋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줬다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처를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그는 보호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방임된 것이다.
그는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 결정적인 차이는 리플리증후군처럼 적극적으로 자기와 주변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매우 특수한 그의 조건 덕분인데 그는 ‘영애=공주’로서 십대를 보냈다.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타인에게 체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이 적당히 포장해준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무능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출을 피하는 정도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댓가가 있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똑바로 볼 때 사람은 성장할 수 있으니까.
성장을 멈추고 자기를 감추고 싶지만 성취는 이루고 싶은 그에게 조력자는 꼭 필요하다. 거짓 자아를 지켜가는 것은 늘 아슬아슬하기 마련이라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가 든다. 그러니 판단과 실행에 도움을 주면서도 결코 배신하지 않고 자기의 팽창된 거짓 자아를 유지시켜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조력자는 타인이지만 자아의 중요한 기능을 대신하기에 남이라 할 수만은 없다.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안정적인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고 자기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이런 모든 이야기는 그저 추정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냥 소설이지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아이들을 보다보면 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사례를 종종 만난다. 부모의 높은 기대를 채우기 위해, 또는 스스로의 욕망이 강하다 보니 자기애가 적절하게 다듬어지지 않아 환상 속에 사는 아이들, 환상을 지키려고 오히려 현실을 회피하는 아이들을 본다. 물론 그 아이들에게서 빼낼 것이 많지 않다면 아이들은 향후 조력자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빼낼 것이 많다면 적당한 조력자가 나타난다. 회사라도 물려받는 후계자라면 누군가 달라붙을 것이고 이 취약한 아이들은 그들을 생명수처럼 아낀다. 이들은 현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 현실에서 적당히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나 고맙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용당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용하는 것일까? 이용당하는 것이라면 불쌍하게 여겨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렇지만은 않다. 스스로를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고, 성숙을 포기하고 유아적 자기애에 머무르고 싶어한 욕망의 대가다.
요즘 마음이 답답하고 뉴스에 젖어 살다보니 이런 상념만 떠오른다. 정치적으로야 그가 법을 어겼는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만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심리는 알기도 어렵고 심리를 아는 것이 정치적 판단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이런 증명할 수도 없는 추론들이 머리에서 자꾸 이어지는 것은 그저 나의 직업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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