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적군의 인질극 아사마 산장 사건 50년

영화 아사마 산장사건

일본어 한자 浅間山荘事件 (あさまさんそうじけん)

아사마 산장 사건은 1972년 2월 19일 일본 나가노현 기타사쿠군(北佐久郡) 가루이자와마치(軽井沢町)에 있는 가와이 악기 제작소(河合楽器製作所) 소유의 사원용 휴양 시설인 아사마 산장에서 일본 적군의 일부 세력인 연합 적군이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연합 적군의 조직원 5명이 아사마 산장 관리인의 배우자를 인질로 하여 10일 간 산장에서 경찰과 대치하였는데 인질은 약 219시간(약9일) 정도 감금되었다가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일본에서 경찰과 대치 중에 일어난 인질 사건중 인질 감금 시간이 가장 긴 기록의 사건이다.

민간인 1명과 경찰 기동대원 2명이 사망했으며 경찰관 26명과 보도관계자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체포 후 조사과정에서 1971년 연말부터 1972년 2월까지 두달간 사상 단결(総括)을 구실로 군마현 산속의 아지트에서 29명의 적군파 대원중 12명을 구타, 야외방치 등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조직원중 일부는 탈출 및 체포되고 최종적으로 남은 5명이 경찰 추적을 피하는 과정에서 아사마산장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는 일본 전 국민들에게 매우 끔찍한 소식이었고, 전국에서 활동하던 적군파 대다수가 회의감을 느끼게 하여 일본 적군파가 해체되는 원인이 되었다.

1947년생 반도 쿠니오

국외 도피한 반도 쿠니오(坂東國男) 등 적군파 멤버 7명은 현재 국제 수배중이다.

1977년 일으킨 일본항공 472편 납치사건의 범인 5명중 한명이다.

인도 뭄바이 이륙 후 항고리를 하이잭(하이재킹)하여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후 일본정부에 동료 석방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초법규적 조치로 수용하여 지명한 9명중 출국을 희망한 6명을 석방하고 몸값까지 보냈다.

이들은 1970~80년대 각종 테러사건에 가담했던 인물들이다.

일본적군은 텔아비브 공항 난사사건(7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미국대사관 점거사건(75년), 인도 상공에서의 일본항공기 납치사건(77년) 등 각종 테러를 자행했다.

적군은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갔던 ‘요도호 납치사건(70년 3월)’으로 유명한 적군파의 계보를 잇는다.

적군파 출신인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와 교토대 학생운동 그룹이었던 교토파르티잔의 핵심 멤버인 오쿠다이라 쓰요시(奥平剛士)가 71년 2월 창설했다.

이들은 “해외에 운동거점과 동맹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본을 떠났다. 일본 내 적군파들은 72년 2월 ‘아사마산장 사건’으로 궤멸됐다.

이 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져 2002년 개봉되었다.

제목은 돌입하라! 아사마 산장 사건 (突入せよ!「あさま山荘」事件)

시게노부 후사코 22/5/28일 출소

2000년에 체포된 일본적군 최고간부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 76)가 28일 형기가 만료되어 출소한다.

1974년 9월 네덜란드의 프랑스 대사관을 무장 점거한 헤이그사건(ハーグ事件)의 공모공동정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