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소네 일본총리가 한중 국교정상화에 중간역할

일본 외무성 한중 국교정상화 주선 외교 문서 공개

1986년 11월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와의 회담 자리에서 한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양국에 무역 창구역할을 할 연락사무소 설치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일본 외무성이 20일 공개한 외교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나카소네 총리는 중국 방문 2개월 전에 한국을 먼저 방문했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총리는 1982년 총리 취임 후 이듬해 한국을 방문했다. 수상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종전 후 일본수상이 한국을 방문 한 것도 처음이다. 당시 한국이 요청한 경제협력차관 문제를 들러싸고 한일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1년 한국이 막대한 군사비를 부담하여 일본을 북한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으니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며 협력 금액을 10배로 늘려 100억 달러를 제공하라고 요구한 상태였다. 당시 외무장관이 일본대사를 불러 국방예산 분담 명목으로 통보했다.

일본측에서는 일개 외무장관이 주재국 대사를 불러 돈을 내놓으라고 해서 당시 외무상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1965년 청구권 협정에 이은 대규모 경제협력을 둘러싸고 한일간 논쟁에 불이 붙었다.

나카소네 일본총리 청와대 전두환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한중 국교정상화에 중간역할

전두환 정권은 한국이 군사비 부담을 줄여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을 완수하도록 돈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측 분석결과 추가적인 외자 도입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국내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한 정치적 요구로 판단했다.

1981년 2월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은 레이건 대통령에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유지를 위해 일본이 원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지지를 이끌어 낸다. 이를 토대로 전두환 정권은 안보 분담금을 내놓으라고 일본측에 들이댄 것이다.

일본은 주일미군 주둔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경제협력을 안보의 논리로 포장하는 것은 일본의 헌법정신인 전수방위(專守防衛)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전두환 정권의 요구를 마냥 무시해 한일관계를 파탄 낼 수도 없었다.

이때 일본측 밀사로서 한일관계를 막후 조정한 인물이 박정희의 직속 상관 세지마 류조(瀬島 龍三)였다. 한국의 신군부와 일본의 구세력을 이어주는 역활을 했다.
최종적으로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전두환과 담판 끝에 40억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한다.

청와대에서 전두환이 “(한일관계를) 실질적으로 동맹관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하자 나카소네는 “과거를 반성한다”고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예정에 없던 가라오케 대회에서 나카소네가 한국 트로트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르자 전두환은 일본의 엥카 ‘그림자를 연모하여’를 부르며 화답했다. 둘은 얼싸안았다.

전두환이 불렀다는 엔카 ’그림자를 연모하여’를 찾아 보았다. 1932년에 발표된 히트곡이다.
히카와 키요시(氷川きよし)가 부르는 影を慕いて (카게오 시타이테 かげをしたいて)

나카소네 일본총리 중일수교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한중 국교정상화에 중간역할

나카소네 일본총리와 후야오방 총서기, 1986년 11월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이 때 한국측에서 나카소네 총리에게 “중국과의 국교정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 문화 등 민간 교류를 확대하고 싶다는 입장을 중국 정부에 전해 달라고 했다”며 한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중간 역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과 일본의 정상 수교 이전에 양국에 무역 연락 사무소를 설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LT협정을 언급하며 “무역 대표부가 더 좋겠지만 LT사무소 같은 것을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두면 좋을 것 같다”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한 것으로 나온다.

LT무역 (통칭: LT협정): 1962년 11월에 일본과 중국 사이에 맺어진 중일 장기 종합무역에 관한 각서에 의거, 양국 사이의 정식적인 국교는 없지만, 상호 연락 사무소를 설치하고, 정부 보증 융자를 이용하여 이루어진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무역이다. LT는 당시 각서에 서명한 중일 책임자의 이름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중일 국교정상화는 1972년 9월 29일 공동성명 발표와 함께 정상 수교가 체결되었다. 한중수교는 1992년 8월 24일로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또한 나카소네 총리는 “한중 사이에 LT 무역이 가능해지면 일본과 북한 사이도 같은 식으로 할 수 있다. 그럼 북한을 우리쪽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장기적으로 일본과 북한 사이도 같은 형태로 관계 개선을 도모 할려는 의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치 외교사 전공의 홋카이 가쿠엔 대학(北海学園大学)의 와카츠키(若月) 교수는 “상호 연락 사무소를 두는 것은 국교 정상화의 이정표(一里塚)이며, 실제로 6년 후인 1992년에 한중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 진 것을 생각하면 매우 감개 무량하다. 나카소네 총리가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 “한국 측이 주선 요구”

나카소네 전 총리는 2012년 9월 NHK인터뷰에서 “한국 측이 한중관계 회복을 위해 주선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중국측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북한의 존재 때문에 일본과 수교를 체결하는 것과는 입장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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