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풍습 요바이(夜這い) 미즈아게와 후데오로시

요바이(夜這い)는 남자가 여자 침소로 몰래 간다는 뜻이다. 하우(這う)는 기다를 의미하며 한자는 취음자이다.

일본 각지에 존재했던 풍습으로 원래는 남성이 여성의 집에 가서 청혼하는 것을 요바이(よばい)라고 했다. 고어에서 이성에게 구혼을 하다(원뜻: 수차례 호소)는 요바우(呼ばう)가 어원으로, 옛날에는 밤의 이미지가 있어 이 한자(夜這い)가 취해졌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이 시집을 가는 요메이리콘(嫁入り婚)이 주류를 이루면서 요바이 풍습은 비도덕적으로 여겨졌다. 결국 청혼의 의미는 없어지고 자고 있는 사람의 침실을 몰래 방문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지금은 일본 AV 제목에서 볼 수 있는 단어다.

요바이 역사

메이지 다음이 다이쇼(大正: 1912~1926) 시대인데 이때 까지 일본 각지에서 요바이가 행해졌다고 한다. 실제로는 전후 고도성장기 직전까지 농어촌 지역에서는 존재했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 말기에 태어나 일본에 남아 있던 요바이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본 민속학자 아카마츠 케이스케(赤松啓介)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보통 동네 노처녀, 카카아(嬶, 아내 혹은 다른 유부녀를 친하게 부르는 호칭), 과부(後家,고케) 들이 요바이에 대해 청년(若衆)들에게 교육을 하고, 장년 남자들은 첫경험을 치룬 딸들의 성교육을 했다. 부모들이 요바이를 통해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첫경험을 치루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시골에서는 동네 마다 청년 모임(15~25세, 결혼하면 졸업)이 있었고 마을의 주축이 되어 활동했다. 작은 동네에서는 3,40대가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요바이는 대체로 청년모임에 들어가면서 시작되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과부를 대상으로 행해졌다. 동네에 과부가 부족하면 40살 이상의 유부녀들이 상대를 해주었다.

제비뽑기로 상대를 고르면 연장자가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함께 동행하거나 혼자 보내는데 마을에 따라서는 즉시 요바이를 시키지 않고 연장자의 조리(草履) 짚신을 들고 밖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일본 짚신 조리(草履)

이미 경험을 한 사람은 새롭게 만날 유부녀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고, 미경험자는 호기심과 부끄러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장자는 저 집 아줌마는 무섭다며 마음에 안들면 쫓겨날 수도 있다며 놀려대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다음 날 별거 아니라며 불평하거나 아주 흡족해 하는 두부류로 나누어졌다.

미즈아게(水揚げ )

일본의 뉴스에 나오는 미즈아게는 (생선)어획을 의미하지만 이 경우는 여성의 첫경험을 뜻한다.

초경(初潮)이 있고 조금 지나면 엄마가 딸에게 첫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상담 후 마을에서 나이도 있고 여성을 잘 다루며 성격이 좋은 장년에게 약간의 성의를 표시하고 부탁을 한다.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는 안된다.

원래 미즈아게(水揚げ)는 유곽에 들어온 여성이 처음 손님과 잠자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극상 후데오로시 AV 시리즈

숫총각의 첫경험은 AV 제목에 많이 나오는데 후데오로시(筆おろし)라고 한다. 일어 사전에 새로운 붓을 사용하다, 어떤 일을 처음 하는 것, 동정 파괴(동정졸업, 첫체험) 등으로 나온다. 새 붓은 털의 풀기를 물로 제거한 후에 사용하는데 이러한 준비 작업이 후데오로시의 어원이다. 옛날에는 붓을 성기에 비유했는데 이런 작업을 여성과 처음 성관계 하는 것에 빗댄 것이다.

자유로운 일본의 성문화

일본의 자유로운 성문화는 1960년대 들어 급격히 사라졌다. 그러면서 여성들에게 정조 관념을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에 물질이 풍부해지면서 개인이 재산을 축적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요바이의 민속학 성애론

일본에선 메이지 유신 전까지도 각 지방에선 군혼제가 존재했다.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이지만 주기적으로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고 자기도 다른 집에 가서 자거나 하는 식이다.

특히 백미는 요바이(夜這い)라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밤에 여자 방에 숨어들어가 육체관계를 맺는 풍습이다.

이 때 여자의 부모는 딸의 방에 외간 남자가 들어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해 주었고 자기 딸의 방을 찾는 남자가 없으면 매력없는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남자를 고용하여 딸의 방에 넣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결혼한 여자는 요바이가 금지되는 지역도 있고 아예 남편이 집을 비워주는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과부집은 아직 성경험이 없는 소년들에게 첫 요바이 대상으로 관습적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렇게 소년들의 첫 상대가 되어 동정을 빼앗는 것을 후데오로시라고 한다.

이 때 대개 과부들은 솜털이 뽀얀 소년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주었는데 자신도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 다른 마을로 노동력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요바이가 빈번하게 행해지면 당연히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유부녀가 임신을 하면 그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든 남편의 호적에 올리는 것이 불문율이었고 과부나 처녀가 임신을 하면 사토코(里子)라고 하여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이런 풍습은 관치가 미치지 않는 지방에서만 존재했고 다이묘 이상의 귀족 집안에선 나름대로의 정절관념이 있었다.

때밀이 산스케(三助)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유나(湯女)라는 목욕을 도와주는 여성이 있었는데 퇴폐적으로 변질되자 에도 말기에는 산스케(三助)라는 이름으로 남성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지금도 산스케로 불리는 때밀이가 있는 목욕탕이 있다.

일본도 우리처럼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소박을 맞는 풍습이 있었는데 임신을 빌며 여자 혼자 온천에 들러 몇일간 휴식을 취하곤 했다. 이때 온천에는 ‘산스케’라는 용모가 아름다운 남자가 고용되어 불임으로 고통받는 새댁의 목욕을 돕는데 이때 임신도 같이 도왔다.

애 못낳는 새댁이 절에 가서 백일 치성을 드리면 신기하게 임신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