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카 모음 – 오토코 나라 (男なら)

왜색가요와 엔카의 유래

트롯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기전에 미국에서 발생한 춤 폭스트롯(Fox trot)에서 기인한다.

이 폭스트롯이 1920년대에 콜롬비아, 빅터, 폴리돌 등 레코드사들이 일본에 진출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우리에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는 우리 가요와 가수들이 일본 레코드사에서 취입을 하면서 일본어로 번안되거나 일본가요가 우리말로 번안되어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기도 했다.

이것이 오늘날 트롯 가요와 왜색시비의 발단이다.

우리가 말하는 왜색가요라고 하는 것은 음악이론상으로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속악의 음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음계 중에는 미나까부시와 미야꼬부시의 두 음계로 구성되어 있는 노래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유행가의 대종을 이루는 엔카는 이 두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한국과 일본의 음계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한국, 일본, 중국은 한문 문화권 나라로 5음계를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을 유라시아 음계라고 한다.

서양의 평균율 음계를 토대로 분석해 볼 때 라, 도, 레, 라는 테트라코드(Tetrachord : 4도음정선법)와 미, 솔, 라는 테트라코드가 겹친 음계이므로 서양적인 화성을 자연스럽게 용해시킬 수 있다.

이병헌의 광팬 일본 엔카 가수 사카모토 후유미(坂本冬美)

한, 중, 일 3국에서 보편적으로 한국이 많이 써오던 음계는 라, 도, 레, 미, 솔(계면조)인 라(La)선법이고 중국적인 음계는 솔, 라, 도, 레, 미 즉 솔(Sol)선법이다.

그리고 일본적인 음계는 레, 미, 솔, 라, 시인 레(Re)선법이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일본의 속요음계의 일종인 음선율이다.

서양음악적으로 분석하면 단음계적인 구성으로 미, 파, 라, 시, 도, 미가 있다.

이 음계가 한국 가요에 큰 영향을 준 음계로서 가장 일본적인 정서를 나타내는 음계이다.

현재도 재래적인 가요 구성 음계는 이런 5음계로 가락이 엮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일본 엔카의 여왕이었던 계은숙

여기서 엔카의 유래를 알아보자.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현대화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한편 1883년부터는 더욱 군국주의를 다졌다.

일본 천황의 군인칙어, 그리고 언론을 탄압하는 신문조례법, 징병령개정 등의 발표로 이에 반발하는 청년, 지식층인 장사들의 정치풍자, 그리고 비판적인 시국 풍자극이 성행했다.

자유민권사상을 고취 시키는 조오시, 시바이 일봉의 신파극이 인기를 끌었다.

대중 앞에서 시국을 비판하는 연설을 금지시키자 해학적이고 사회풍자적인 노랫말에다가 일본의 전통 민요나 민속적인 가락에 부르는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악사를 자유 엔카시(自由演歌師)라고 불렀다.

이 자유엔카시들은 재래적인 속요에다 노랫말만 바꿔 인쇄해서 그들 특유의 악기 샤미셍을 반주해 노래하면서 가사집을 1전씩에 팔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개창운동 같은 것이었는데 의식가요, 저항가요, 같은 것이 잘 팔렸다.

얼마 후 서양악기가 도입되면서 샤미셍 대신 바이올린과 아코디온 같은 악기가 반주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 속요가락이 자연스럽게 서양음악(평균율)과 융합되어 갔다.

이런 풍조가 만연되자 일제는 서양음악을 도입하면서 재빨리 창가교육을 국책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슬로건으로 “새로운 서양문명을 배우자. 근면하자. 공부하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자” 등 일종의 사회정화 운동을 급진적으로 펴나갔다.

이윽고 1881년 ‘창가독본’이 발행될 즈음, 그들은 올겐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창가선생 양성소가 발전해서 일본 최초의 관립음악학교로 발전, 현재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립예술대학 음악대학이 된 것이다.

1910년대 일본 학생들이 중심인 특유의 풍자적인 노래 쇼세이부시가 유행하면서 엔카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대학가에서는 엔카조의 노래가 자생적으로 불리는 일종의 캠퍼스송이 되었다.

한편 1819년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창가는 군가조로 바뀌었으며 1904년 노일전쟁이 터지면서 엔카풍의 군가가 많이 등장하게 된다.

1928년 군부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지금까지 반체제 또는 사회 풍자적인 엔카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패배의식화 시키는 사랑, 이별, 눈물, 미련, 대중, 원망, 무기력 등의 가사로 변질되어 갔다.

바로 이 시기가 한국에서는 레코드 문화가 꽃피던 시대로서 일제 식민지 하에 있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본 엔카에 물들어 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가요의 엔카 유래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일제는 영, 미의 곡을 금지시키는 한편, 엔카 역시 전시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금지시켰다.

키타노아키자쿠라(北の秋桜) / 북녘의 코스모스 김연자

1945년 8월, 조국광복의 기쁨도 잠시뿐, 38선의 비극은 우리 국민을 자연히 비탄에 빠져들게 하였고 넋두리 같은 재래식 가요가 대중의 심신을 달래주던 세월 속에서 다시 엔카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이곡은 왜색가요로 금지됐다가 1987년에 해금됐다) 이 후 1962년 민방시대가 열리면서 흘러간 옛가요 프로그램과 다양해지는 여러 형태의 가요방송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연가풍의 노래가 활기를 띄게 되었고 새로운 연가풍의 노래가 우리 가요의 주류를 이루어 갔다.

에치고에 잠들다(越後に眠る) – 코바야시 사치코

여기에 1965년 한, 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일제하에서 살아왔던 기성세대들에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 가수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일본 엔카풍의 노래 창법을 그대로 모방하기도 했고, 일부 작곡가중에는 일본방송이 잘 잡히는(당시는 통신 위성이 없었음) 포항이나 삼천포 등지에 내려가 여관방에 죽치고 일본 방송을 청취하면서 곡의 소재를 모아 발표하는 웃지 못 할 시절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게 일본 노래 표절의 발단인 듯싶다.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유, 무명의 가수들이 일본을 드나들면서 레코드 취입을 했다.

그 가운데서도 이성애 만큼 성공을 거둔 가수는 없을게다.

그녀는 원래 팝송가수로서 특히 카펜터스의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작곡가 박춘석에 의해 철저히 엔카 가수로 재무장한 후 1976년 일본으로 건너가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리메이크시켜 해방 이후 32년 만에 한국 가수가 일본에 가서 성공을 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뜨리며 그녀는 1년 반 동안에 무려 8장의 앨범을 낼 정도로 활약이 컸으며 일본의 평론가들은 “엔카의 원류를 한국의 이성애에서 찾았다”며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82년에는 조용필이 동경문화방송(JOQR) 개국 30주년 기념행사 ‘아시아 뮤직 포럼’에 초청되어 아시아의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단연 돋보이는 가수로 클로즈업 되었고 ‘팩스 뮤지카’의 공연 무대를 통해 아시아의 정상을 과시하며 당시 나카소네 수상이 그가 묶고 있던 호텔을 직접 찾아오는 등 국위선양을 했는데 록 가수인 그가 일본에서 이토록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허공’, ‘미워 미워 미워’ 등 엔카 풍의 트롯 때문이다.

그렇다고 트롯 가수가 일본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건 아니다.

이미자, 문주란, 김수희, 나훈아 등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근자에는 계은숙과 김연자가 활동 중인데 계은숙은 10대가수 청백전에 출연할 정도이고 김연자 역시 착실히 인기를 구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에서는 전혀 무명이던 이박사(본명:이응석)가 트롯 메들리로 목하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개화기 이후 우리 노래 속에는 일본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아 왔다.

이는 정치적, 문화적인 사회배경이 그러했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자각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최근에는 엔카가 아닌 일본의 팝의 답습으로 옷만 갈아입었을 뿐 신세대들이 즐기는 가요에서도 표절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어 오늘날에도 엔카로부터 시작한 왜색음악의 흔적이 살아남아 있음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대중음악의 뿌리(선성원 저)]

엔카로 듣는 트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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