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의 진실! 생존 승무원의 증언

1985년 8월12일 실제 추락한 JAL 123편 B-747 점보기 (오사카 이타미 공항)

도쿄 하네다 공항 이륙 후 오사카 이타미 공항으로 비행중이던 일본항공 123편은 이륙 12분 뒤 비행기 꼬리날개 완전 파손으로 균형 제어 불능에 빠지며 약 32분간 선회와 급강하를 반복하다 군마현의 산기슭에 충돌한다.

탑승객 524명 중 520명 사망(한국인 3명)했으며, 4명은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생존한다.

일본 명절 오봉 야스미를 앞둔 시기로 탑승객이 많았다.

그리고 추락사고 약 1개월 후 일본항공 정비 담당자는 유족에게 사죄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1987년에는 기체 검사에서 수리상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일본 운수성 검사관도 자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항공기 사고는 전원 사망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항공기 자체 결함으로 인한 것인지, 동일 기종에 공통된 문제인지 원인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정부, 미공군 헬기의 구조 도움 거절

일본정부가 미공군의 구조협력을 거절한 사실은 사고 직후 생존자중의 한명인 승무원이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헬기를 보았다고 나중에 진술하면서 미공군 헬기의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주변 상공을 비행중이던 미공군의 C-130수송기가 최초로 큰 불길을 발견하고 항공 자위대에 즉시 통보한다.

자위대 전투기가 발진하고 사고지점을 확인, 1시간 후 구조헬기가 이륙하여 40분 후에 추락현장에 도착하지만 적외선 암시장치 등 본격적인 야간 구조장비가 없어 당일 밤은 구조대원이 강하하지 못하고 그대로 철수한다.

당시 수송기에 타고 있던 미군이 아츠기 주둔 미 해병부대에도 구조헬기를 요청했는데, 구조개시 직전에 작전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당사자는 상부에서 그 사실에 대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내에서는 재난구호 체계에 대한 문제점과 관계 당국의 자세에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추락 14시간 뒤 구조개시

구조작업은 비행기 추락 후 14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나가노현 경찰 기동대, 자위대 대원들이 헬기에서 강하하며 이루어진다.

오전 11시쯤에 중상을 입은 4명의 생존자가 발견되며 헬기로 이송된다.

아침 4시 반에 사고기 잔해를 발견했음에도 수색 개시가 늦어진 원인은 항공기에 실린 방사능물질 때문이다.

사고기에는 다량의 의료용 방사성 동위체가 화물칸에 실려 있었고 기체의 진동을 방지하는 무게추 일부에 열화 우라늄이 사용되고 있어 주변지역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어 별도 명령시까지 대기했다고 한다.

최초 구조 지연의 원인은?

헬기 출동 지연 등 초기 대응이 늦어진 원인 중의 하나가 사고 직후 재난대책본부 및 유관기관간의 소통 문제로 위치정보 포함 정확한 상황 파악이 안됐기 때문이다.

사고 지점은 얼룩조릿대가 무성한 경사 30도의 험난한 산으로 2km 떨어진 현장까지 지상구조대원들은 1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일항기 추락 사고 개요

1985년 8월 12일 18시에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18시56분에 오사카 시내에 있는 이타미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국내선 보잉 747SR-100(등록번호 JA8119)이 군마현의 다카마가하라산(高天原山) 능선에 추락한 사고를 말한다.

당시 사고 장소가 오스타카산으로 보도되면서 사고 현장 일대를 오스타카 능선(御巣鷹の尾根)으로 부르지만 실제 오스타카산의 능선이 아니다.

18시 24분 (이륙 12분 후) 사가미만 상공을 순항 고도 24,000ft (7,200m)를 향해 상승 중 23,900ft 통과 직후에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갑작스런 충격음과 함께 항공기 수직 꼬리날개가 수직 안정판의 아랫 부분만 남기고 파손된다.

18시 28분 긴습신호를 수신한 자위대 중부항공관제단은 자위대 산하 중앙재난대책본부에 통보하고 18시 56분 군 레이더기지 책임자는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판단하고 대기중이던 팬텀 전투기 발진을 명령, 17시 01분에 이륙한다.

도쿄관제탑 레이더에서는 18시 59분에 비행기가 사라졌고, 도쿄재난대책본부는 19시 03분 모든 관계기관에 통보한다.

단일 항공사고로는 역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이다.

일본 운수성 항공사고 조사위원회의 사고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사망자 수는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 524명 중 520명(태아 제외)에 달하며, 그 중에는 한국인 3명을 포함하여 가수 사카모토 큐, 한신타이거스 구단 사장 등 유명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생존자는 4명으로, 그 중 한 명은 일본항공 비번 객실승무원이었다.

일본의 성묘 명절인 오봉 연휴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탑승객이 많았다.

항공업계뿐만 아니라 일본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일항기 추락사고(日航機墜落事故)’나 ‘일항 점보기 추락사고(日航ジャンボ機墜落事故)’라고 한다.

유일한 123편 기내 사진 1장

JAL123편 시간대별 항적(고도)

The Crash of Japan Airlines Flight 123

항공기 추락 원인

이 항공기는 사고 전력이 한번 있는데 가장 자주 발생하는 ‘테일 스트라이크’ 후 수리한 경력이 있었다.

항공기 수리는 1975년에 이루어졌고 그 이후로는 보수만 하고 운항했다.

테일 스트라이크란?

테일 스트라이크 (Tail strike)는 착륙 혹은 이륙시 기체가 기수를 너무 들어 꼬리 부분이 활주로에 닿는 사고를 말한다.

2013년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일어난 아시아나항공 사고도 착륙중 엔진 출력이 부족했던 항공기가 실속해 급강하 하던중 착륙을 포기하고 기체를 순간 재상승시키는데 꼬리부분이 활주로에 충돌한다.

충격으로 꼬리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항공기는 한바퀴 돌고 미끄러지며 멈춘다.

다행히 동체가 크게 파손되지 않아 307명이 탑승했는데 사망자는 3명에 그쳤다

아시아나항공 사고순간 재구성 – 충돌부터 멈춤까지 18초

사고원인

일본항공의 정비사가 항공기 테일스트라이크 사고 이후 보잉사의 매뉴얼대로 수리를 하지 않았고, 기체가 노후화되어 10년뒤 운항중 꼬리날개가 공중 분해되었다.

관련 영상

2015년 방송 NHK스페셜 JAL123편 사고 공백의 16시간

일본항공 점보기 사고로부터 30년. 추락현장에서 생존자 발견까지 16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日航ジャンボ機事故 空白の16時間

후지티비 사고 30주년 특집방송 2014.8.12

사고 15년 후 기장의 마지막 목소리가 녹음된 보이스레코더가 공개된다.

일본항공 123편 추락 30번째 여름! 생존자가 밝히는 32분간의 싸움! 보이스레코더의 새로운 목소리

https://kankoku.tistory.com/11795312

[참고] 항공기에 적재 가능한 화물 무게는?

대한항공 B747-400F 화물기 사양

화물기의 경우 적재중량은 117톤 정도 되며 연료무게, 기체무게를 합하면 이륙중량은 무려 390톤 정도 된다.

최대이륙중량 (maximum take-off weight)

페이로드(여객,화물,우편물)와 탑재연료를 합한 무게로 B-747의 경우 기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국제선용은 약385톤, 국내선용은 약272톤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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