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뽑은 최악의 한국인 김연아, 최대 경제스캔들 이토만사건의 허영중

어둠의 제왕, 일본재계의 픽서 허영중(許永中)은 누구인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인이 뽑은 최악의 유명 한국인 리스트이다.

유튜브 이슈왕 TV 채널에서 소개하며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찾아보니 2015년 5월 잡지 발매 직후에 공개되었던 사진이다.

어둠의 지배자 허영중 일본방송 첫출연 2017.12

김연아가 선정된 이유는 “일본의 피겨 영웅 아사다 마오의 넘사벽으로 잘난체하는 못난이”로 적혀 있다.

‘최악의 한국인’에는 김연아 외에도 가수 이홍기, 박근혜 전 대통령, 안중근 의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범 조승희, 일본 지하경제의 거물 이토만 사건으로 구속된 재일한국인 허영중(許永中)씨가 포함됐다.

최악의 유명 한국인 기사가 실린 일본잡지

황색잡지 “실화 분카 터부 (実話BUNKAタブー) 증간판” 2015년 6월호에 실린 기사였다.

인지도 있는 잡지는 아니고 가십성 기사 위주인데 한국을 비하하는 기사를 자주 싣는다. 예전에 몇번 본적이 있는 잡지다.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은 2015년 당시에 국내에서 소개가 되었던 것 같다.

2015년 5월에 투고된 일본 블로그의 한국반응 기사 사진에 한국어가 적혀있다.

잡지 커버에 적힌 문장이다.직역이다.

한명 남기 않고 저질스럽고 수치를 모르는 한국 유명인

당시 일본 블로그에 소개된 한국반응 기사

허영중은 누구인가?

민족적 재일한국인 실업가 허영중(許永中)

재일한국인 허영중은 당시 일본내에서 어둠의 제왕, 어둠의 실력자, 지하세계의 대리인, 나니와의 괴인 등으로 불렸다.

일본 야쿠자 폭력조직의 대부로 나오는데 대학교 3학년 중퇴할 때까지 불량써클 활동을 했지만 20대에 처갓집의 도움으로 건설회사를 설립, 수완을 발휘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또한 오사카에 민족사료관과 한국국제문화센터를 설립하는 등 일본내에서 한국을 알리고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앞장섰다.

1947년 오사카 조선인 부락 태생의 허영중은 일본에서 전후 최대의 경제사건으로 불리는 ‘이토만(伊藤萬) 사건’으로 버블 경제 폭락으로 휘청거리는 일본 경제계에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힌 주인공이다.

일본인들이 천하게 생각하는 부락민(동화지구) 출신으로 큰 덩치에 한 주먹했던 그는 대학 때부터 불량써클 보스로 활동하며 상납금을 받았다고 한다.

야쿠자는 물론, 일본과 한국의 정재계에 두터운 인맥을 가진 인물로 이토만 사건으로 일본에서 구속되어 수감중 2012년 12월에 한국으로 이송되어 다음 해에 가석방되었다.

일본에는 동화지구로 불리는 피차별 부락이 아직 다수 존재한다. 4천개가 넘는 지역에 80만명 이상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동화지구는 역사적 과정에서 신분차별에 의해 형성된 빈민지구다.

일본사회에는 태생, 출신지에 따른 일본 고유의 신분차별이 아직 있다.

예로 결혼 상대자가 동화지구 출신이라면 부모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일본 법무부의 인권계몽 비디오중에는 인종차별, 헤이트 스피치 뿐만 아니라 동화문제를 다룬 영상도 있다.

이낙연 총리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당시 기사. 구속 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허씨는 본국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국제수형자 이송조약에 따라 한·일 양국 동의하에 국내로 이송되어 마지막 1년 남짓을 복역했다.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왜 한국행을 택했는지는 의문이다.

재일 한국인 2세인 허씨는 일본 특별영주자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수형자 이송에 의한 출국이 되면 재입국허가를 받지 않고 출국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특별영주자 자격을 상실한다.

단, 일본에 가족이 있으면 인도적인 이유로 입국을 허가하는 사례가 많은데 허씨의 경우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본 법무부는 재입국허가를 내주기가 어렵다고 2013년 가석방 당시에 결론을 내렸다.

불구속 재판중 한국 입국 후 잠적한 허영중, 2년후 도쿄에서 체포된다.

일본 최대의 경제 스캔들 ‘이토만 사건’

1990년 중견 상사인 이토만의 상무 등과 공모하여 이토만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자금으로 자신의 3개 계열사를 통해 그림 211점을 시세보다 높은 528억엔에 구입한다.

이토만 측에 263억엔의 손해를 끼친 허영중은 징역 7년 6월과 벌금 5억엔의 실형이 확정되어 복역중이었는데 다른 경제 사기사건으로 추가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96년 상사인 이시바시(石橋)산업의 유출된 주식을 회수해 주겠다며 179억엔의 약속어음을 받아낸 뒤 이를 증권시장에서 임의로 처분한 혐의로 기소되어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아 형기가 가산되었다. 합해서 13년 6월의 형을 받은 것이다. 2013년 9월 30일 형기의 95% 이상을 채워서 법무부가 가석방했다.

당시 출소 모습이 일본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허영중은 이시바시산업 관련 사기사건은 무죄임을 주장해 왔다.

사기죄 성립이 안되는데 당시 검찰이 다른 중요인물을 체포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기죄를 적용, 검찰이 의도적으로 엮었다는 것이다.

수감생활 중에도 본인 관련된 가짜뉴스가 보도되는 것에 상당히 분노를 표시했다고 한다.

먼저 출소한 그의 지인은 ‘허씨는 프라이드가 상당히 강하다. 사기라는 잡범 딱지 붙이는 것과 자신의 행동을 왜곡하는 보도는 절대 용납 못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참고로 메이지 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인기 여배우 키타가와 케이코(北川景子)와 결혼한 가수 겸 탤런트 다이고(DAIGO)의 아버지 나이토 타케노부(内藤武宣)가 이토만 사건 허영중의 오른팔이었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는 제74대 일본 총리를 지냈다. (1987.11~1989.6)

허영중 도피 2년여만에 도쿄 호텔에서 체포

허영중 체포에서 가석방 출소까지 연도별 정리

  • 1991년 7월 이토만 사건으로 체포 구속. 기소 후 6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
  • 1997년 처가 제사를 이유로 여행허가를 받아 한국으로 입국 후 잠적. 보석금 6억엔은 몰수
  • 1999년 11월 도쿄의 호텔에서 체포됨(비밀리에 일본 입국)
  • 2001년 7년 6개월 실형과 벌금 5억엔의 실형 판결. 상고했으나 2005년 기각되며 형 확정
  • 2008년 이시바시산업 사기사건으로 6년 실형 확정으로 총 13년 6개월의 형기
  • 2012년 12월 한국으로 이송
  • 2013년 9월 가석방

2017년 12월 일본방송 인터뷰 화면.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한다.

허영중 일본방송 첫출연 예고편

허영중씨 아래 영상에 나오는 오사카 서울올림픽 선전탑 설치

어둠의 실력자 이토만사건의 허영중 미니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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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블로그 / 페이스북

오사카에 민족사료관 및 한국 국제문화센터 건립 

이토만사건 구속전 허영중 인터뷰

허영중씨는 1991년 7월에 구속된다. 1991년 5월16일자 매일 경제신문 과 경향신문 5월18일자 기사